2019년 개봉한 영화 ‘엑시트’는 조정석과 임윤아가 주연한 재난 코미디 영화로, 개봉 당시 ‘웃긴데 뭉클하다’는 입소문을 타며 94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재난 상황에서 벌어지는 탈출극으로만 보기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는 훨씬 더 많습니다. ‘엑시트’는 대한민국 청춘의 무력감, 가족 내의 존재감 부재, 사회적 구조의 폐쇄성 등을 웃음과 액션이라는 장르 속에 녹여냄으로써 현실을 유쾌하게 풍자한 작품입니다. 본문에서는 ‘엑시트’가 어떻게 현실 속 청춘을 반영하고, 우리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합니다.
1. 고용남, 당신과 닮은 그 청춘
조정석이 연기한 고용남은 전형적인 ‘스펙은 있지만 결과가 없는 청춘’입니다. 대학 시절 클라이밍 동아리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졸업 후 취업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현재는 무직 상태로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 잔치에서도 형제들과 비교당하고, 어머니에게는 민폐로 여겨지며 눈칫밥을 먹습니다.
이러한 설정은 많은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은유합니다. 학창 시절엔 잘나갔지만, 졸업 후 사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자존감을 잃어가는 이들. 영화는 고용남을 통해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를 비웃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로합니다. 그는 무기력한 청춘이지만,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누구보다 침착하게 행동합니다. 과거의 쓸모없어 보이던 경험이 생존의 무기로 변하는 순간, 관객은 감동과 동시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각을 얻게 됩니다.
고용남은 눈에 띄지 않던 존재였지만, 위기 속에서야 비로소 가족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것은 현실에서도 많은 청춘들이 바라는 바와 일치합니다. ‘평소에는 무시받더라도, 언젠가는 나도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 말입니다.
2. 현실 사회의 축소판 – 닫힌 도시, 열리지 않는 시스템
‘엑시트’의 재난 배경은 도심 한가운데입니다. 영화는 독가스 테러라는 설정을 통해 현대 도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냅니다. 고층 건물은 출구가 없고,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으며, 구조는 늦고, 사람들은 제각기 살아남기에 급급합니다. 이 모습은 마치 현대 사회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닫힌 사회 구조’와도 닮아 있습니다.
용남과 의주는 탈출을 위해 문을 두드리고, 불을 쏘고, 몸을 던지지만 구조 요청은 쉽게 닿지 않습니다. 이는 곧 ‘도와달라고 외쳐도 시스템은 듣지 않는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많은 청춘들이 고립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설정입니다.
자동화된 문, 카드를 요구하는 출입구, 차단된 도로는 현대화된 도시이지만 동시에 인간성 없는 사회를 상징합니다. 영화는 이 같은 구조 속에서도 결국 사람을 구하는 건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소방관, 구조대원, 가족, 친구가 손을 내밀 때 비로소 사람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3. 윤아의 변신 – 능동적 여성 캐릭터의 등장
임윤아가 연기한 ‘의주’는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입니다. 단순히 남자 주인공의 조력자로서 존재하지 않고, 함께 위기를 돌파하는 파트너로 등장합니다. 미모와 커리어를 갖췄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힐을 벗고 뛰며, 담을 타고, 줄을 타고 건물을 넘습니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화는 한국 영화가 점차 젠더 인식에 있어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의주는 위기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하고, 용남에게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때론 먼저 행동합니다. 이 모습은 여성 관객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기며, ‘함께하는 생존’이라는 메시지를 강화합니다.
특히 용남과의 관계는 로맨스가 중심이 아닌 ‘동지애’로 표현됩니다. 과거 동아리 선후배였던 두 사람은 과거의 감정을 떠올리지만, 서로에게 기대기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돌파하며 진정한 파트너가 되어갑니다. 이 과정이 억지스러운 연애 감정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점은 영화의 진정성을 지키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4. 가족이라는 울타리 – 잔소리의 이면에 숨은 사랑
영화 속 고용남의 가족은 일면 냉정합니다. 어머니는 "니가 뭘 하냐"며 타박하고, 형제들은 은근히 비교합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가족들은 누구보다 먼저 용남을 걱정합니다. 특히 구조 후 가족들이 달려와 그를 부둥켜안는 장면은 많은 관객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엑시트’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항상 다정하지는 않지만, 위기의 순간엔 그 무엇보다 강한 울타리가 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잔소리와 무관심 속에도 ‘사랑’이 있다는 한국적 가족 코드가 영화 전반에 녹아 있어, 더욱 진한 감동을 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고용남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관객들은 저마다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게 됩니다. ‘나는 부모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형제로, 어떤 기억을 남기고 있는가’ 같은 감정의 파장이 자연스럽게 뒤따릅니다.
5. 장르의 조화 – 코미디와 재난을 섞다
‘엑시트’는 한국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장르 혼합의 성공 사례입니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가 진중함과 슬픔을 강조했다면, 이 영화는 그 안에 유머를 절묘하게 녹였습니다. 하지만 그 유머는 결코 상황을 희화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관객이 긴장을 완화하고 캐릭터에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조정석의 특유의 입담, 윤아의 반전 매력, 고속 승강기 씬, 드론 구조 장면 등은 액션과 유머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이처럼 장르의 밸런스를 정확히 맞춘 연출은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제공하며, 반복 관람을 유도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결론 – 엑시트,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 영화
‘엑시트’는 단순히 재난에서 탈출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 속엔 수많은 메타포가 숨겨져 있습니다. 청춘의 무기력함, 부모의 시선, 사회 시스템의 장벽, 그리고 그것을 뚫기 위한 작지만 위대한 용기.
고용남의 마지막 점프는 단지 건물 간의 도약이 아니라, 사회로의 복귀이자 ‘나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의 점프입니다. 영화는 그 장면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말을 겁니다.
“당신에게도 출구는 있습니다. 지금은 안 보여도, 뛰다 보면 보일 거예요.”
그래서 ‘엑시트’는 웃기고 유쾌하지만, 그만큼 뭉클하고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웃으며 봤지만, 돌아서서 생각하게 만드는, 한국 영화계에 남을 만한 청춘 서사입니다.